[이케아를 만들다③] 세계인의 삶에 더한 이케아의 가치

기사입력 2018.01.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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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미국 애틀랜타 주에 위치한 이케아
 
1943년 창립된 이케아는 1963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해외진출을 시도하여 현재 전 세계 29개국의 355개의 매장을 운영한다. 여기서 이케아의 해외진출 사례 중 독일, 미국, 영국,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의 진출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영국의 권위주의에 자유로 맞선 이케아

1980년대 후반 이케아는 영국에 진출하며 “영국식은 이제 그만”(“Stop being so English”)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기존의 권위주의적이고 딱딱한 가구에서 벗어나 이케아의 자유롭고 젊은 가구로 집을 꾸미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문구의 이면에는 이케아의 신념이 담겨있다. 당시 영국의 비싼 귀족적 가구는 다수의 것이 아닌 계급을 드러내는 소수의 것이었다. 이러한 영국 사회에서 이케아는 더 많은 사람들, 즉 대중이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가구를 누릴 수 있도록 더 낮은 가격에 높은 품질의 가구를 제공하겠다는 이케아만의 이념을 보여주었다.

이케아는 해외진출에 하는데 있어 무조건적인 현지화가 아닌 이케아식 전략을 택하였다. 이케아의 가치와 신념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인식에 이케아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영국인들에게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권위주의에서 탈피하라고 했듯이 이케아의 해외진출은 이케아만의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독일에 전한 취향이라는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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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초기 독일 카탈로그
 
이케아가 독일에 진출한 1970년대에는 전 세계의 경제가 석유파동으로 침체되어 있었다. 특히 독일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물가와 실업률이 치솟고 있었다. 가구의 비싼 가격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독일의 보수적인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가구는 당연히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케아는 ‘스웨덴에서 온 상상초월 가구점’이라는 말과 함께 저렴함과 화려한 디자인을 강조하며 등장했다. 

“이제는 누구나 쉽게 디자인 제품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자기가 쓰던 가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 역시 어떻게 집을 꾸밀지 스스로 결정하는 재미를 누려야 마땅하다.” 

이 말과 함께 이케아는 독일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취향을 가진 가구를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음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돈보다 취향이 중요합니다.” 독일에 발간한 첫 카탈로그의 문구다. 이케아는 독일의 진보적인 젊은이들 세대의 유형이 되며 큰 성공을 거둔다. 물려주는 것이 전통인 사회에서 독일인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취향으로 집을 꾸밀 수 있도록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가구를 공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케아였다. 

중국인들의 욕구를 일깨운 이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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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중국 심천에 위치한 이케아
 
이케아는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의 의견에 따라 1999년 중국 상하이에 진출하였다. 당시 상하이는 1천 4백만이 거주하는 중국의 제 2의 도시이고 중국 산업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캄프라드는 상하이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당시 중국 시장은 이케아가 진출하기 아직 이른 상태였다. 이케아의 트레이드마크인 놀라울 만큼 싼 가격은 중국시장에서는 오히려 보통보다 비싼 가격군에 속하게 됐다. 또한 이케아의 조립식 가구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중국인들에게 맞지 않았으며 유럽식으로 맞춰진 제품들은 중국인들에게 불편하고 생소하였다. 한 예시로 중국인들은 빵을 담는 나무 상자를 보고 이를 나무 목베개라고 생각하여 머리를 뉘어보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캄프라드는 중국 시장의 고속 성장을 믿고,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산층과 상하이를 비롯하여 새롭게 이주한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여 그들에게 이케아만의 가치를 전하고자 노력했다. 이케아는 자신의 강점인 저렴하고 화사한 디자인을 내세워서 중국인들의 자기표현 욕구를 자극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듦으로써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였다. 또한 중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배치하고 고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주었다. 한 예시로 전 세계 모든 이케아는 이케아 멤버십이 있는 사람들에게 무료 커피를 제공한다. 그런데 중국 이케아에선 노년층이 멤버십 가입을 통해 커피를 받고 하루 종일 커피 라운지를 장악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중국에서의 무료 커피 제공을 금지할 법 하였지만 이케아는 모두에게 편안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가치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오히려 노년층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도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렇듯 이케아는 중국 고객들의 의견이 더해진 자신들의 가치를 그들에게 전달하고 유대를 형성함으로써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미국인의 삶에 더한 새로움

1985년 미국에 진출하기 전 이케아는 단기간에 이룬 유럽 시장 진출의 성공과 캐나다 진출 경험으로 자신감에 차있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가구 시장이었지만 미국 진출 후 처음 몇 년 간 이케아는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다. 매장 건설비, 인건비, 유통비용, 그리고 환율 등의 문제로 비용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이에 이케아가 기존의 저가 전략을 버려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케아에게 있어 저가 전략은 흐름에 따라 바뀌는 단순한 전략이 아닌 ‘대중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한다’는 신념의 수단이었기에 이케아는 저가 전략을 유지하였다. 대신 자체적인 생산 시스템의 구축, 작업환경의 개선, 그리고 신규매장의 이동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를 통해 2009년 이케아 매장은 미국 내에서 38개로 증가하였고, 매출도 10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대폭 증가하였다. 


[영상1] 이케아의 언보링(Unboring) 캠페인

또한 이케아는 이케아의 신념을 미국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우선 미국 문화를 조사하였다. 이케아가 북미시장에 진출하면서 진행한 CP+B광고대행사의 서베이 조사에 의하면 당시 미국 사람들은 가구보다 배우자를 더 자주 바꿨다. 즉, 가구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물건이 가지는 추억을 향수병처럼 갖고 있어 새로운 구매를 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케아는 가구를 바꾼다는 것은 당신들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간단하고 당연한 일이라는 언보링(Unboring)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이 캠페인에서 버려진 램프는 쓸쓸한 듯 보이지만 램프는 감정이 없으므로 버려진다고 슬퍼하지 않음을 전달한다. 더 싸고 좋은 제품으로 바꿔서 집안에 활기를 넣으라는 이케아의 가치를 전한다. 캠페인의 마지막 문구 ‘새 것이 좋다, 바꿔라’처럼 이케아는 당시 미국인들이 갖고 있던 가구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 이케아의 가치를 공유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다테노이 가즈에, 『이케아 insight』, 박선영 역, 예문, 2014.12.22.
뤼디거 융블루트, 『이케아』, 배인섭 역, 미래의 창, 2006.11.20.
뤼디거 융블루트, 『이케아 불편을 팔다』, 배인섭 역, 미래의 창, 2013. 5.10.
앤더스 달빅, 『이케아, 북유럽 스타일 경영을 말하다』, 김은화 역, 한빛비즈, 2013.11.11.


브랜드디스코버 이케아 연구팀
김희종 책임연구원 justinek0822@gmail.com
성지윤 연구원 tjdwldbs97aa@gmail.com
이동준 연구원 bluegill0222@gmail.com
이혜은 연구원 snflo98@gmail.com
임채린 연구원 vicl_06@naver.com

지난 브랜드스토리 보기 <이케아편>
[브랜드디스코버 연구팀 기자 white@kcforu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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